2025 회고 - 교육 EP. 4

주싱·2026년 1월 17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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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진로를 생각하며 처음으로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진지하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장벽 앞에 너무 쉽게 꿈을 포기했던 것 같다. 수학 선생님이 되려면 성적이 아주 좋아야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져 있을까? 최근에 다시금 교육에 대한 꿈이 생긴 것 같다.

AI의 결과보다, 과정이 즐거운 사람들

AI의 발전으로 한 해 동안 LLM과 바이브코딩이 유행했다. 컴퓨터와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LLM과 함께 자연어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고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들이 시도한 결과물은 충격적일 정도로 놀라운 면도 있었다. 그러나 내 안에는 반대편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LLM은 마치 사람이 컴퓨터나 프로그래밍 언어 레벨에서 일어나는 세부사항을 몰라도 되도록 돕지만 막상 사람들은 그 속을 궁금해 하고 직접 만져보고 싶어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유튜브를 보다가 이지혜님의 개발자 남편이 아내가 매일 같이 자기와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고 읽어 보는 것을 보며 크롤링을 통해 이것을 자동화하여 메일을 보내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장면이 기억났다. 그때 이지혜님은 왜 쓸데 없는 걸 만드냐며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만들라고 개발자 남편을 답답해하던 장면이 인상깊었다. 개발자들은 온통 뭔가를 자동화하고 시스템화하는 일에 관심이 많지만 사람은 어떤 경우에 그 일을 직접하는 걸 좋아한다. 이지혜님에게 자기 기사를 검색해보는 일은 본인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었고 굳이 자동화하고 싶지 않은 수동이 즐거운 일 중 하나였던 것 같다. LLM이 만들어 주는 결과물들도 어쩌면 꽤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속을 뜯어 보고 싶고 그 안에 숨겨진 원리들을 적정 수준에서 알고 싶어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적정 수준의 지식을 정확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컴퓨터 공학과에서 배우는 상세한 전공 지식보다는 조금 추상적이면서 개념을 잘 설명하는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내 생각은 틀릴지도 모른다. 지금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어셈블리어를 통해 컴퓨터가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컴퓨팅 원리들이 이런 것이 된다면 내 생각은 틀린 것이 될 것이다.

흥미를 돋구는, 피지컬 컴퓨팅과 우주

중학생 딸이 학교에서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엔트리 코드 블럭들을 조금 살펴보고 아이의 과제도 조금 도와주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관련된 예제 코드나 자료가 온라인 상에 많이 없었다. 아이가 과제로 하려는 것들은 여러 센서나 출력 장치들이 통합되어 있는 보드 위에서 동작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것들에 ‘피지컬 컴퓨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피지컬 AI’라는 개념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사실 학생들에게는 여러 센서나 출력 장치를 다루는 ‘피지컬 컴퓨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지컬 컴퓨팅’을 통해서 아이들이 책으로만 배우는 수학이나 과학을 프로그래밍을 통해 실제 움직이는 것들로 표현해 보는 것이 공부에 의미를 발견하거나, 흥미를 유발하는데 도움이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12년 간의 초중고 교육 과정을 돌아보면 공부가 무척 괴롭고 재미가 없었는데, 그저 책에 있는 내용을 공부하고 시험을 잘 치기 위해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와서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공부라는게 정말 재미있는 거구나를 느꼈는데, 초중고 12년을 보내는 학생들이 대학에서 내가 느낀 것들을 더 빨리 느끼도록 돕고 싶고, 그래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공부를 조금 더 실질적으로 의미있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현재 몸 담고 있는 우주 분야도 아이들에게 공부의 이유를 설득하고 흥미를 유발하게 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느낀다. 우주의 인공위성을 설명하는데는 여러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원리들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 이론들이 이런데 활용되는구나를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다면 피지컬 컴퓨팅에 수학과 과학의 원리들을 녹여내어 실질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또 이것을 우주 분야까지 확대 적용해 본다면 학생들에게 정말 유익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프트한 소프트웨어

올 해 코드 리뷰어가 되어 코드 리뷰란 것을 조금 해보게 되었다. 주니어 개발자 한 분과 코드리뷰를 꽤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코드에 대한 개념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 해야한다는 철학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나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다. 세월이 가고 환경이 변해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 기본 철학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AI로 인해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든 사람이든, 원래 소프트웨어를 전공한 사람이든 이 개념을 꼭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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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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