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돌아보면 멋지게 이루어낸 직업적인 성공들이 지천에 있지만 잠시 우리 집을 둘러보면 망가진채로 방치되어 있는 것들이 널려있다. 레일이 낡아 쉽사리 닫히지 않는 화장실 수납장, 아내가 힘겹게 여닫다 깨진 수납장 전면 유리는 1년이 넘도록 방치되었다. 한쪽 화장실에서 물을 사용하면 다른쪽에서 찬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이상 현상도 관리사무소에 말하면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는 일인데 몇 번의 계절의 변화에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아이들은 이런데서 샤워를 하며 여름을 나고 겨울을 났다. 오래되어 삭은 거실 전등 케이스도 비닐로 절묘하게 가려진 채 거실을 밝히고 있다.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과연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10일여의 방학을 맞아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데 스트레스틀 받는 내 마음이 내 가치관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내 삶의 무너진 영역이 아닐 수 없다. 방학 때는 무너진 우리집을 세워야할 것 같다.
내 삶의 패턴 전반도 많이 망가졌다. 커피를 다시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었고 (하루에 한 잔 이상은 습관에 의한 일종의 중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에 좋지 않은 기름진 음식들을 다시 많이 먹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져 러닝도 몇 달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몸에 좋지 않은 습관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듯 연쇄적으로 고착화 되어가는 것 같다. 반대로 어느 것 하나를 끊어내면 다른 좋은 것들도 하나둘 서서히 함께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악순환의 고리를 하나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달리기를 할 때면 나는 똑같은 곳을 뱅뱅 도는 걸 힘들어 한다. 헬스장의 러닝 머신을 뛰는 것도 왠지 모르게 힘들다. 대신 나는 야외 코스를 크게 한 바퀴 도는 걸 선호한다. 우리 집은 약간 고지대에 있는데 그래서 내가 정한 코스, 즉 한 바퀴를 뺑 돌아서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의 끝은 약 1 키로 정도가 오르막이다. 마지막에는 안그래도 힘든데 이 오르막을 뛰어야 하니 더 힘들다. 그런데 이 코스가 내 삶에 묘한 힘을 준다. 신기하게도 이 코스를 뛰며 내 정신을 붙잡은 기억이 삶의 곳곳에 스며든다. 뭔가 힘든 일이 있으면 내 마지막 달리기 코스의 1 키로가 생각난다. 그래 잠깐만 참고 달리면 곧 내가 정한 결승선이다. 이런 생각이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를 꽤 힘있게 한다.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고 건강한 삶의 패턴을 다시 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