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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에 입사하며 ‘막노동’이라는 메타포가 내 생각을 지배했다. 그 중에 나는 나를 아무것으로도 제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니까 코드만 작성할 거야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입사 후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준비의 시간도 가지고 있지만 이외의 것들도 많다. EMI/EMC 라는 이론에 대한 세미나를 듣는다. 예전 같았으면 이걸 내가 왜 들어 하면서 불평했을텐데 조용히 들어본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세미나 일정을 잡으며 볼멘소리를 하고 말았다. 습관이란 건 역시 무섭다. 열, 진동 시험 같은 것들에 제품을 들고 갔다가 오기도 하고, 광학 카메라 엔지니어가 사진을 찍도록 소프트웨어 환경 구성을 부탁해 와서 그런 일도 한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일이고 내 손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 이게 더 나은 사고의 틀이라고 생각된다. 과거의 내 생각을 부끄럽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으로 나에게 선언한 것들은 단번에 내 삶에 익숙한 것이 되지 않음을 느낀다. 전자 이론과 관련된 세미나 일정을 잡으며 내 입술에 불평이 튀어나왔다. 나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있고, 내가 아는 나로 내 삶을 가두어 두려는 마음이 가득하다. 말로 선언한 것들을 힘을 주어 삶에 새기지 않으면 안된다. 이게 자연스러운 내가 될 때까지 약간의 의식적인 힘을 계속 주어야 한다. 그래야 내 것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에서 배운것들)
어제는 팀에 고온, 저온 환경에서의 제품 시험이 있었다. 제품을 챔버에 넣고 70도까지 올리며 소프트웨어가 정상동작하는지 테스트하고 다시 -30도까지 내리며 동일한 테스트를 진행한다. 온도 변화를 아주 천천히 하기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대기하는 시간이 많다. 아침에 시험을 준비하며 제품과 도구들을 다 함께 포장한다. 그리고 시험장소에는 내가 안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내가 해당 소프트웨어 담당자가 아니었고 가면 멍하게 대기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다른 일이 많은데 대기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내 일을 하는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동료들을 보내고 자리에 앉자 후회하는 마음이 몰려왔다. 내가 또 다시 내 일인 것과 내 일이 아닌 것을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프트웨어 개발의 효율 측면만 생각해서 책상에 앉아 개발만 하려는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문득 과거의 일들이 몇 가지 떠올랐다. 해외에 지상국을 구축하는 일이 있었는데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이 함께 가길 원했다. 사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관점에서 보면 직접 가서 소프트웨어를 설정하고 테스트하는 것과 원격으로 하는 것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 가면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이 하는 일을 같이하며 시간만 빼앗길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가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효율을 생각한 것이다. 안 그래도 바쁜 일정인데 거기 가서 하드웨어 엔지니어 일을 하며 시간을 빼앗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에서 돌아보니 그때의 결정이 후회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땔 수 없는 관계이다. 나는 그들의 일을 함께 하며 그들과 섞일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야 훨씬 긴밀하게 협력하기 좋은 관계가 되었을 것 같다. 나는 그러지 못했고 그들과 협력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보면 내 소프트웨어의 사용자고 내부 고객이었다. 현장에 가서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시스템을 운영하는지 보면서 내 소프트웨어가 살아 숨쉬는 것을 계속 눈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의 존재 이유에 대해 내게 계속 말해줄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컴파일과 실행이 성공하고 화면을 누르면 어떤 이벤트가 잘 발생하는 정도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다. 나는 실제 현장에서 내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 봐야 더욱 생동감 있게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나의 과거의 이런 생각을 다시 한 번 부끄럽게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계속 힘을 주어 변화되어 가야한다. 현장에 가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의 일을 같이 하며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자. 그리고 현장에 가서 내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생동감 있게 살아 역사하는지 내 온 몸의 감각으로 익히고 느끼자. 그게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내가 더 생동감 있게 잘 일 할 수 있는 방법이고 책상에 앉아 있는 개발자로 나를 제한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 책상에 앉아 효율만을 따지던 과거의 나는 죽어있던 개발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인상깊은 단어네요, 책상에 앉아 죽은 개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