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말, 개발자 인생에서 처음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발표를 했다.
개발자로서 작든 크든 커뮤니티에서 발표하는 개발자 분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발표해야지' 라는 동경이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학 동문 개발자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선배님께로부터 내 이야기를 한 번 나눠보지 않겠냐 라는 권유를 받았다.
처음에는 두가지 마음이 교차했다.
"진짜 하고싶다!! 🤩" 그리고, "내가 자격이 될까..? 🫠"
이제 막 3년차가 겨우 된 개발자가,
심지어 전공자도 아닌 내가,
무슨 자격으로 어떤 이야기를 개발자 선배들 앞에서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이번 모임의 발표 주제가 '나의 커리어 연대기' 였다.
이 주제라면 그래도 꽤 흥미로운 나의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게 된 이 발표의 제목은,
"법대생이었던 내가 일어나보니 개발자가 된 건에 대하여" 이다.
나는 포항에 있는 작은 대학교인 한동대학교라는 곳에서 국제지역학과 UIL 을 전공했다.
UIL 은 우리 대학교에만 있는 독특한 학과인데, US and International Law 즉, 미국법-국제법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전공에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항상 신기해하곤 했다. 😅
한국에서 미국법을 공부하고, 미국변호사가 되는 경우는 흔한 경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우리학교 대학원중에 HILS (Handong International Law School) 은 미국 로스쿨로도 꽤나 유명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원래 법조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학생기록부에 장래희망으로 '검사' 아니면 '변호사' 를 꼭 적었다.
뼛속부터 문과출신이었고 코딩, 프로그래밍등이랑은 거리가 한참 먼 사람이었다.
그때 당시만해도 내가 개발자가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 못할일이었다. ㅎㅎ
마냥 그냥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왜?' 내가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어야 겠다 라는 깊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 중 나는 인생에서 큰 변환점 하나를 맞이한다.
당시 KB국민은행과 YMCA 가 후원하는 '라온아띠' 라는 해외 봉사 프로그램에 발탁이 되었다.
약 6개월간 필리핀 팡가시난 이라는 곳으로 해외봉사를 가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6개월간 함께 몸을 부대끼며 살았던 팡가시난이라는 곳은 자연 그대로였다.
핸드폰도 없었고, 컴퓨터도 없었다.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해야할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봉사했던 주 필드는 '덤프사이트' 라는 쓰레기 매립지였는데,
이 덤프사이트에 버려지는 쓰레기들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러 구호활동을 했다.
필리핀에서 정말 많은 세상의 모습을 봤다.
굶어 죽는 사람, 매일 들어오는 쓰레기들을 파헤치면서 조금이라도 쓸만한 것을 찾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 가는사람..
이게 그냥 듣고 사진을 보는 것과, 그 모습을 직접 보고 냄새를 맡고 느끼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사진으로 힘든 사람들을 보면 '아, 힘들겠다, 불쌍하다..' 라는 생각까지만 이어지지만,
이러한 상황속에 내가 직접 경험 안에서 체감하고 있으니 '아, 이런 곳을 어떻게 변화시키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당시에 내가 공부할 수 있는 것중에 나의 기준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 '법' 이었다.
그것도 '국제법'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이것이 내가 국제법을 공부한 이유다.
이렇게 법을, 게다가 미국법을 열심히 공부했던 내가 사업을 시작했다.
너무나 빠른 전환이라 글을 읽으시는 분은 아마도
하실 것 같다.
졸업하고 여러가지 고민이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돈!💰 때문이었다.
로스쿨을 가기에는 돈이 너무 비쌌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선배 한 분에게 병행수입 사업을 계획중인데 영어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침, 앞길에 대해 고민도 많았고 돈이 필요했던 나는 많은 고민 없이 빠르게 결정을 한다.
직원 세명.
대표 한 명, 팀장 둘.
그 팀장 중 한명이 25살인 나...🫢
위의 사진은 병행수입 아이템을 찾기위해 싱가폴에 꽤 큰 박람회에 참여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생각보다 남아있는 사진이 많이 없다... 🫠)
재미는 있었지만, 그렇게 큰 성공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차게 되어 군대에 반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군대에서도 참 재미있게 생활했다.
위의 사진은 군단 토론대회에 부대 대표로 참가했을 때 사진이다.
오른쪽이 빅뱅의 대성, 왼쪽이 래퍼 던밀스다.ㅎㅎ
이때가 군대에서 핸드폰을 쓰니 마니 할 때라서 토론대회가 좀 크게 열렸었다.
아무래도 큰 행사이다보니 연예인 두명이 사회를 봤는데, 기념으로 토론대회 이후 사진을 찍은거다.
아무튼 군대에서도 참 재미있게 생활했다.
하지만 이렇게 마냥 행복....하지는 못했다. 😅
왜냐하면...두둥...
COVID-19의 19는 2019년에 코로나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
내가 군대에서 한참 생활하고 있을 때, 코로나가 터지고 세상이 변했다.
사실, 군대에 가서 적응하고 있을 때만해도 전역하고 나와서 하던 사업을 마저 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군대 말년에 휴가를 나와서 사업 파트너에게로부터 상황이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힘들었다.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삶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왜 나한테만 세상이 이럴까.
왜이렇게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가. 😭
마음이 정말 힘들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세상을 보는 데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플랫폼화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오.. 이 변화된 세상을 주도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사람들이 누구지?
아,
개발자구나? 💡
나에게 있어서 현재 세상을 볼 때,
프로그래밍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 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생각이 들자마자 뭐에 홀린듯이 무작정 국비 교육기관에 백엔드 과정을 수강신청하게 된다.
이것과 관련해서 지인들을 통해 작은 곳이지만 유튜브도 출연하고 뉴스기사에도 나오게 된다.
워낙 내가 뼛속까지 문과 이미지가 강했던 터라
친구들도 내가 신기했는지 주변에서 '문과출신인데 프로그래밍 공부하는 사람없어?' 라고 하면 다 나를 떠올리곤 했다.😁
비전공자, 30대, 국비학원 출신.
매력이 과연 있을까? 🤔
나는 정말정말정말 정~~~말 첫 취업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정말로 어려웠다.
아무리 개발자 수요가 높고 채용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다 남들 이야기 같았다.
광고에 뭐 '개발자 초봉 6천!, 신입 개발자 대거 채용!' 이런거 보면 화가 났다. 🤬
그렇게 뽑아가는 개발자랑 지금 내가 처한 현실과는 너무 괴리가 컸다.
그래서 나를 팔기위해(?) 세운 전략은 이것이었다.
나의 재능
1. 성실함
2. 성장 가능성
내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어필하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나는 성실함이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였고,
이 성실함을 통해 내 성장 가능성을 어필했다.
그 성실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로 한 방법은 Github에 공부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코딩이 참 재미있었다.
사실, 재미있다고 나 자신을 속인 것 같기도하다.
"내 인생의 배수진을 치고 선택한 것이었으니 재미있어야만 했다."
처음 Java 를 배울 때는 Class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100번을 반복했다.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코딩을 했다.
무작정 클론 코딩도 해봤고, 좋다고 추천받은 강의들은 모두 소화도 다 못시키면서 꾸역구역 들으면서 매일 공부를 했다.
언젠가는 내가 한 번 이라도 보고 들었던 것이 이해되고 소화되길 기대하며 그렇게 무식하게 공부를 했다.
감사하게도 2021년 6월, 이런 나의 가능성을 봐준 스타트업에서 처음 개발자로서 경력을 시작한다.
첫 직장에서 기쁨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바로 절망하고 만다. 😞
내가 학원에서 제대로 배운게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이때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제대로된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출근하고 퇴근하자마자 새벽까지 매일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
이 습관이 지금까지 꾸준하게 공부하며 깃헙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게 하도록 했다.
첫 회사는 경영난으로 인턴으로 입사했던 나는 정규직전환에 실패하게 된다.
또한, 함께 일했던 개발자 분들 역시 대부분이 퇴사를 권고 받게 된다.
감사하게도 그대로 바로 두번째 회사로 이직에 성공하게 된다.
두번째 회사는 완전 스타트업 그 잡채...였다.
게다가 시니어가 없는 곳이다보니 A 부터 Z 를 주니어들이 해결해야 했다.
처음부터 어플리케이션을 주도하여 설계하고 만들어야 했다.
이때 정말 많은 삽질을 경험했다.🛠️
물어볼 사람도 없고, '코드리뷰' 라는 것은 마치 전설의 포켓몬 마냥 🫠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만드는 것들이 제대로 된 것인지, 좋은 방법인지도 판단하기가 참 어려웠다.
이곳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해야했기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백엔드 비지니스 로직 뿐 아니라 인프라와 관련하여 삽질을 하면서 관련된 내용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
두번째 회사는 단 한번도 제대로 월급이 제 날짜에 나온적이 없었다. 미틴!!! 👿
게다가 시니어 개발자가 없다보니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를 해봤다고 해도 이게 맞는 방법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빠른 이직을 다시 결정하게 된다.
두번째 회사까지 거치면서 세상이 정말 나를 대놓고 때리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비전공출신에 국비학원 출신 개발자로서 살아내기가 참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코딩이 너무 재미있었고 공부를 쉬지 않았다.
이직을 결심하고 회사를 찾던 중, 가고싶은 회사가 생겼다. 🙏🏻
하지만 그곳은 경력직만, 그것도 3년차 이상만 뽑고 있었다.
그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일단 지원을 했고, 감사하게도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세번째로 일했던 회사는 Snaps(현재를 Webling 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라는 중견기업이었다.
영어이름을 쓰는 조직문화가 있었는데, 나는 Joshua로 불리게 되었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경력이었지만, 나의 성실함과 성장가능성을 높게 쳐주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개발자가 팀 단위로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주니어임에도 이것저것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회사에서 인정도 나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조금씩 회사에서 시간이 지날 수록 이제 겨우 2년차가 된 내가 기술적으로 리드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나는 절대 결코 잘할 수만은 없는 연차인데...??
작년 8월 15일.
인프콘에서 영한님의 강의를 들었다. (👉🏻 영한님 인프콘 강의 후기 및 정리)
주니어 개발자의 성장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Comfort Zone' 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년의 경험이 10년을 반복하면 1년차의 스킬을 가진 10년차가 됩니다."
영한님의 경고를 듣고 두려웠다.
스냅스에서 약 2년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지만, 더 성장을 위해서 더 큰 도전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직을 결심하게 된다.
위 사진은 작년 10월 와이프와 베트남 여행을 가기 직전 에어프레미아랩스의 최종 합격 전화를 받고 있는 내 사진이다.
개인적으로 너무 의미가 있는 사진인데,
최종합격 전화를 받고 있는 내 앞에 에어프레미아 항공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
이 때 전화를 받고 얼마나 신나고 감사했던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나는 에어프레미아랩스에 합류하게 된다. (👉🏻 이직에 관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풀어놓은 글)
에어프레미아랩스에 합류한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간다.
합류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아, 내가 정말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였다.
이곳에 오니 개발을 잘하는 사람이 많았고,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곳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내가 가장 못하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 이었다.
현재 내가 느끼기에 'Fear Zone' 과 'Learning Zone'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개발자'와 '성장'이라는 단어는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성장을 너무 하고 싶었고,
정말 이제는 성장을 할 수 밖에 벗는 상황과 환경에 온 것 같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하고 싶었던 성장할 환경에 놓이게 되니
썩 즐겁지만은 않았다.
나의 못함이 드러나는 것.
내가 그것을 마주하는 것.
그것들은 생각보다 참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내가 도전하지 않았다면 이렇게나 많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아직 갈 길이 멀다 라는 것이고,
그만큼 성장할 것이 참 많다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 인생은 정말 롤러코스터 같았다. 🎢
내가 개발자가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앞길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
아직 살아온 인생이 그렇게 길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와보니 삶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나는 신앙이 있는 사람으로서, 중학생 때부터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다니는 성경 구절이 있다.
"사람이 자신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내 이야기와 이 글이 누군가에게
조금의 도전을,
조금의 위로를,
조금의 용기를 줬길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 모두 화이팅. 👍🏻
민재님이 살아가는 삶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거 같다는 느낌이 빡! 오는 좋은 글이네요!! 저도 어느 Zone에 있는지 고민하게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ㅏㅏㅏㅏ 🙏✨
국비학원에서 제대로 배운게 없고,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공부 방법이나 추천 책 혹은 강의가 있을까요?
저는 하드웨어/펌웨어 엔지니어인데 직무 변경 이직을 고려하고 있어 문의드려요!
훌륭하십니다 선생.
자고로 인간은 야생에서 구르고 체험해봐야 하는 법이죠.
스타트업에서 구르고 고생한 경험이 두려움으로 각인되어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겁니다.
멋있네요 ㅎㅎ.. 응원합니다~
개발자가 되기로 하신 이유가 저와 비슷해서 흥미로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