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짧은 책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읽기에 부담도 적고, 집중도 잘되고, 들고다니기도 편하기 때문인데, 이 120p도 안되는 책은 나의 뒷통수를 때리기에 충분했다.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내용들은 내 뒷통수가 얼얼할 시간도없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언젠가 스위스의 산사태나 미국의 허리케인이 불때면 신문의 대문짝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자연의 복수'
마치 평소 사람들이 자연을 업신여긴것처럼. 자연을 돌보지 않았던것 처럼. 사실은 그렇지않은데.
수 세기 동안, 철학자들은 자연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주장해왔다. 자연은 단순한 '사실'이고 인간은 그 '사실'을 '당위'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여전히 사실과 당위를 혼동하고 있다.
사실과 당위를 혼동한다는것은 무슨뜻인가?
사실은 있는그대로, 실제한 사건등이고, 당위는 윤리적으로 마땅히 해야하는일 정도로 볼수있는데,
책에서는 사실과 당위를 혼동하는것이 부자연스러운 격정이라고 표현했다.
부자연스러운 격정이란 무엇인가? 두려움과 경이로움의 경계 그 어딘가의 격정적인 감정을 뜻한다.
가령 폭우로 인한 수해라던가 산사태, 지진, 쓰나미같은 자연재해를 볼때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단지 생명또는 재산이 위험에 처한 것에 대한 증폭된 두려움인지,
아니면 재앙에 대한 모종의 책임감에서 비롯된 두려움인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왜 이들의 훌륭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연에서 가치를 찾으려 하는가?
나는 위 질문에 대한 답이 단순히 대중의 실수, 종교적 믿음의 잔재, 또는 엉성한 사고의 습관으로 설명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집단 비합리성의 단순한 사례가 아니라 오히려 바로 합리성의 인간적 형태에 관한 사례이다.「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정말 모순적이게도 우리가 사실과 당위를 혼동하는것은 합리적인데,
왜냐하면 이것으로 질서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자연이 죽이기에 우리도 죽여야 하는 게 옳고, 자연도 그러니 우리도 망치고 파괴해야 하는 게 옳은가? 만약 아니라면 우리는 자연이 하는 일을 전혀 생각하지 말고, 그저 선한 일을 해야 한다.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
사람을 죽여선 안된다. 왜냐하면 사람을 죽이는것은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라는 당위명제는 근거가 없는 명제인데, 우리는 이것을 마치 사실인냥 인지하고 살아간다.
이렇게 사실과 당위는 질서를 만들고, 자연은 그 질서를 뒷받침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
마지막에서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이 세가지이다.
- 자연화는 사실 비평가들이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약한 전략이다. 모든 규범을 지지하는 수많은 자연적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특정 규범을 정당화 시키기위한 자연적 질서를 사용하는것은 규범의 기초가 되는 자연의 유일한 질서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더이상 호소력이 없다.
자연은 정치적 논쟁에서는 더는 강력한 무기가 아니다.
- 자연에 대한 호소는 근본적으로 자연 질서와 규범성 그 자체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지, 어떤 특정한 자연 질서와 어떤 특정한 집합 또는 규범 사이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 인간의 몸에 딸린 이성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이성이다.
책의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어려워서 책을 몇번이고 뒤집어 읽고 지지고 볶고 했었던것 같다.
내가 정리한 내용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님말고?ㅋㅋ 그냥 내가 책보면서 생각했던것들을 다시한번 책보면서 정리해봤다.
개발자로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