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토요일에 주간 회고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프로젝트에 전문가가 없음에도 나름의 순서를 갖고, 차근차근 협의하여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하이파이브⌟를 읽어버린 바람에 인생 회고글이 될 것이다. 우선 ⌜열광하는 팬⌟과 ⌜겅호!⌟를 통해 애자일(동반 성장과 소통, 빠른 대응)을 부르짖게 만들고, 모두를 영웅으로 만드는 기적을 소개해준 켄 블랜차드와 셀든 보울즈 두 분께 감사드린다.
하이파이브는 개인의 성과와 팀의 성과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시너지를 내는 팀이 될 수 있는 지에 관한 책이다.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거쳐 능력있는 개인주의자에서 팀을 사랑하는 하이파이브 코치가 되는 지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팀 워크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배우면서도, 자신이 팀의 성과를 저해하고 있음을 부정하다가 결국에는 받아 들이고, 팀 워크 신봉자로 거듭난다. 웃기게도, 주인공과 함께 나 역시, 부정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 글에서 나는 과하게 솔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솔직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남들보다 배움이 조금 빠르다. 숫기가 모자라고 정리를 잘 못하는 것에 비해, 업무에 적응하고 멀티 태스킹 하는 것에 익숙했다. 이 특성이 시너지를 일으켜, 내가 소속된 모임에서는 혼자 일을 처리해버리기 일수였다.
영화관 아르바이트처럼 인원이 순환되고, 시스템이 갖춰진 그룹에서는 이게 큰 문제로 드러나지 않았다. 업무 자체에 대한 숙련도 긴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알려주지 않는다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업무 적응하지 못할 일이 전혀 없었다. 그 와중에도 기억나는 건, 하이파이브의 주인공처럼 왜 불합리 한 일이 발생하면 더 열심히 일한 나에게도 피해가 돌아 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프로정신이 이상하다고 불평했다. 그들의 프로정신을 내 오지랖과 업무독식이 잡아먹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말이다.
그 다음 내가 속한 그룹은 음대 내 학부 내 연구부(공식 동아리 비슷한 것), 야간 목욕탕 청소팀, 음악 문화예술 교육 팀과 음대 학과사무실이었다. 단언컨대, 내 성과를 인정받아 출세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모른 채, 왜 안하는 지 불평하면서 업무를 혼자 했다. 이 그룹들에서 역할을 할 때, 개발과 개발문화에 대해 처음 접했다.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당장의 이익을 보지 않고 도우며 많이 소통하고 빨리 시도해서 배우는 모습을 보며,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들을 해결해줄 것만 같았다.
개발자 진입 하고서는 항상 후발 주자에 비전공자였기 때문에,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룹을 리드하는 자리를 너댓 번 거치면서, 리더가 아닐 때 잘 호응해야 팀이 원활하다는 원칙을 지켰다. 이 모습은 취업 후 내가 프론트엔드 업무에 익숙해지고, 프로젝트를 쫓아가기 전까지 유지됐다.
나는 업무 적응 이후, 너무 이른 시기에 팀에서 프로젝트 리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개발과 거리가 먼 도메인을 따로 공부하면서, 의료기기법이나 사업계획서 등을 얼추 파악할 수 있는게 주요 이유였던 것 같다. 파트별로 한 명씩 밖에 없는 작은 팀 규모에서 비교적 업무를 마치고 난 뒤 여유를 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내 머릿 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그림들이 내 천재적인 직감이라고 생각했다. 이 그림들을 따라가면 반드시 서비스를 대박낼 것이라고 확신했다. 회의 때는 팀원들과 충돌해서 꺾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그리고 정말 보란듯이 실패했다. 당연히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고 침 튀기며 얘기하던 나는, 스스로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의 얘기를 잠깐 하면 나는 애자일을 상당히 좋아하며 추구한다. 하지만 애자일이 만능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마치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처럼 유연하기 때문에 진화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오픈소스나 개발문화와 닮은 방법론이기도 하다.
회사 서비스는 기존 서비스에서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운 만큼, 애자일 방법론이 어울리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10개월이 흘러버린 프로젝트에 다음 기회가 주어지기란 쉽지 않았다. 팀이 축소된 이후에도 숨김 없는 유대와 소통, 빠른 시도와 학습에 대한 노력은 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겅호!⌟라는 책을 만났고, 겅호팀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그럼에도, 회사에 속해 있는 동안과 나와서도 핵심이 되는 무언가가 모자이크 된 것처럼 흐릿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태에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어떤 역할이라도 감수하고, 모든 팀원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는 스크럼 마스터를 목표로 네트워크와 자원관리 역량을 위해 구름의 쿠버네티스 과정에 합류했다.
쿠버네티스 과정에서도 회사에서 겪었던, 다른 그룹에서도 겪었던 과정의 반복이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백엔드 개발자인 상황이라 조용히 있었던 나는, 점차 익숙해지면서 내가 옳다는 확신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이론 기간을 마무리하고, 프로젝트의 기획 단계로 넘어오면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첫 주차에는 기획 멘토님이 억제 해주신 것 같다. "뇌피셜로 넘어가지 마라"는 말씀이 항상 뇌피셜로 의사결정 하던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통계나 권위, 여론과 같은 설득의 근거자료를 수집하여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식이 내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 주차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유저플로우와 와이어프레임, 디자인 작업처럼 팀 내에서 제대로 아는 이가 없는 프로젝트 구체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실직고 하면 퐁-당-퐁-당으로 화요일과 목요일은 긍정과 경청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재밌는 작업을 진행했다면, 월요일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은 의견이 충돌하고 어떻게든 버텨낸 시간에 가까웠다.
금요일은 사실 수요일과 목요일 그 사이의 느낌이긴 했지만, 목요일의 눈부신 협업과정에 비해 초라했던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하이파이브를 처음 읽기 시작했던 날이기 때문에 내 실망감은 더 컸다. 덕분에, 오늘의 반성과 다음 주에 대한 기대, 나의 성장으로 이어짐에 감사한다.
하이파이브에서 잔잔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쫓아가던 나를 책 속으로 빨아들인 것은, "개인의 성과보다 팀의 성과"가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문구는 "우리 모두를 합친 것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이고 이 문구도 나를 돌아보게 했지만, 금전적 보상이 없는 플로젝트에서도 개인의 성과를 생각하던 나를 직면한 순간이었다.
이 말이 묘하게 작용한 것은,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 당장 우리가 함께 달라붙어야 한다"고 얘기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내 성과를 인정받고 연봉을 보전하려면"을 신경 썼기 때문이다. 한낱 신입 개발자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 모르지만, 옳다고 느끼고 말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길이었다는 뜻이다.
유저플로우와 와이어프레임을 팀원 두 분과 작성하면서, 나는 기술 코치이자 회의 주체자, 협업의 리드 역할을 맡았다.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이파이브에서처럼, 가장 성과를 내는 것은 맞는 사람인 나를 제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팀원들에게 맡은 역할을 돌아가면서 함께 성장할 것을 제안하지도 못했다. 애자일과 협업 정신을 되새기지 않아도 되게, 서로에게 기여하는 행동을 칭찬하는 시스템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이렇게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프로젝트 과정에서 그나마 많이 경험한 팀원이고, 내가 옳다는 생각에 계속 빠져들 것이다. 드문드문 하이파이브는 커녕 팀이라는 말조차 까먹을 것이다. 내가 계속 하이파이브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나보다 프로젝트와 팀원들의 성공을 꿈꾼다면 달라질 일일지도 모른다. 우승이나 훌륭한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협업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멋진 프로젝트 경험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기대된다.
모두를 영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