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에는 반드시 올해 하반기 회고를 쓰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 덧 26년 1월이 저물어갑니다.
더는 미룰 수가 없는 지경까지 와서야 회고를 쓰기 시작해요.
그래도 2025년 한 해, 정말 수고 많았는데 회고 없이 지나갈 수는 없었습니다.

하반기를 요약하는 표현으로 '최악' 외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을 것 같습니다.
더 나빠질 수 없겠다고 생각한 곳에는 한층 더 나쁜 것이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평소 사주는 재미로 한두 번 보는 정도에 그쳤는데, 알고보니 제가 올해 들삼재(삼재가 시작되는 해)라고 합니다.
역시 사주는 빅데이터인가 봐요.
개인적인 일로도, 회사 업무로도 정말 많은(-) 일이 벌어졌어요.
신규 프로젝트 개발에 착수한지 어언 1년이 되어가던 때입니다.
어느 정도 단위 테스트는 진행했고, 제품 인증 절차도 필요하니 통합테스트로 넘어가야 했어요.
통합테스트는 개발자가 아닌 사내 엔지니어들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문서 작업이 덜 된 상태라 사용자 설명서는 고사하고 테스트 시나리오도 간소화해서 제공했는데요.
이로 인해 모든 것이 시작되었어요.
엔지니어들은 근 1년간 개발 중인 제품을 만져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문서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으니, 말 그대로 제로베이스인 상태에서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테스트하기 시작했어요. (좋은 걸까...?)
첫 번째 통합테스트 성적은 100점 중 30점.
예상보다 더 초라한 성적에 우리 팀은 내부적으로 난리가 났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듈 간 결합도였어요.
MSA 방식을 적용하기 위해 기능별로 세세하게 모듈을 쪼개고 개발자 한 명이 모듈 하나를 담당하는 구조로 개발이 진행되었거든요.
덕분에 단위테스트에서는 '일단 내 것은 이상이 없으니까'로 종결되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API를 완전히 모르쇠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API 연동 이슈는 종종 개인의 우선순위에서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통합테스트 때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 번씩 500에러를 뱉어내게 된 것이죠.
이후로 우리 팀은 의도치 않은 1주 스프린트 개발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테스트가 종료되면 결과를 기반으로 1주 동안 미친 듯이 고치고, 그걸 기반으로 다시 테스트가 진행됐죠.

8월에 이르러서는 팀 분위기가 거의 이랬습니다.
고쳐도 어디선가 버그는 튀어나왔어요.
심지어 급한 부분을 고치니 엉뚱한 곳에서 에러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게 개발이죠.
현관문을 고치면 변기 뚜껑이 부숴지는 게 개발의 묘미 아니겠어요?
하지만 마음이 급한 우리에게는 그 자체로 악몽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이사를 해야 했는데요.
입주할 집에 문제가 발생해서 이사를 미루기도 했습니다.
그 덕에 퇴근하면 이사 문제 해결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있네요.
그나마 통합 테스트가 마무리되던 때.
제품 인증 절차도 들어갔으니 본격적인 사전 영업이 시작되었어요.
자세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때부터 팀 분위기가 좋지 않게 돌아갔어요.
와중에 10월에는 제품 홍보를 위해 장기 해외 출장이 잡혀 있었는데요.
개발과 해외 출장 준비를 병행하며 심경이 다소 복잡했습니다.
출장 전에도 할 일이 많았고 출장 후에는 할 일이 더 많았거든요.
그 와중에 분위기도 좋지 않으니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출장을 무를 수는 없으니, 떠나기 전에 최대한 해야 하는 일을 쳐내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9월은 분위기가 뒤숭숭하긴 했어도 제 일에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소문이 돌고 분위기가 가라앉을수록 거기서 멀리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웠던 시기입니다.
긴 추석연휴를 보내자마자 바로 출장길에 올랐어요.
도착지는 두바이. 제품 홍보 겸 GITEX 참관을 위한 출장이었습니다.

GITEX는 두바이에서 매년 주최되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최대의 정보통신 기술 박람회입니다. 최신 기술 혁신과 디지털 전환 솔루션을 소개하는 글로벌 비즈니서 행사로, IT 및 통신 업계 리더, 스타트업, 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합니다.
회사는 GITEX와 함께 주최되는 North Star 행사 부스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North Star은 스타트업 위주의 박람회인데요. 거기서 제품을 선보이고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모든 게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추석 연휴 내내 스크립트를 들고 다니며 달달 외웠어요. 그래도 막상 사람들 앞에 서니까 머릿속이 백지가 되더라고요.
첫 날에는 더듬거리고 스크립트를 훔쳐 보며 소개했지만 마지막 날에는 외운 걸 기반으로 입에 나오는 대로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립트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보단 내용만 지키고 그때그때 대응하는 편이 훨씬 편하다는 걸 이때 알게 되었어요.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니 팀 분위기는 한층 더 딱딱해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한 분이 결국 퇴사를 선언하셨어요.
그게 하반기를 악몽으로 만드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0월 중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인증 시험과 더불어 고객사 시연이 예정되어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분은 1년간 제품의 중추를 담당한 분이셨습니다.
심지어 시연하러 간 곳에서 통합테스트에서도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매우 거대한 버그가 발견되는 바람에, 퇴사하면 타격이 매우 큰 상황이었어요.
여러 논의가 오갔지만 결국 그분은 퇴사하셨습니다.
인수인계를 받는 과정에서도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결론적으로 그분이 담당하던 구역은 전면 재개발 결정이 났습니다.

짤은 이렇지만 사실 제가 부활할 수 있는? 퇴근 시간이? 딱히?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악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거든요.
통합테스트 같은 위기는 약과였습니다.
참고로 8월에 한번 밀렸던 이사는 원래 10월로 예정되었으나 다시 밀렸습니다. 😃
모두 예상하셨겠지만 11월부터 12월은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데 모든 공수가 들어갔습니다.
1년간 개발하던 것들을 한번에 뒤엎는 건 정말이지 악몽과도 같은 과정이었어요.
재설계하고 개발하고 다시 디버깅하고 단위테스트 하고,
와중에 시험 인증과 영업에서 미친듯한 재촉이 왔죠.
저번처럼 기한을 넉넉하게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깃허브의 new project를 딸 때 얼마나 눈물이 앞을 가리던지...
다만 그렇다고 해서 급하게, 되는 대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땜질하듯이 개발을 이어갔다가는 결국 이번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되면 결국 수습은 저나 다른 동료의 일이 되겠죠.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설계에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11월 한달은 회의와 설계의 반복이었어요.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물어봤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견고한 구조를 세우려고 끝까지 노력했어요.
개발 스타트를 끊은 이후에도 설계는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과 다음 스텝, 그 다음 스텝까지 확장되리라는 걸 염두에 두고 최대한 확장성을 보장한 설계를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성공적이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11월~12월이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이외에 생각나는 게 많지는 않네요.
말그대로 정신 없었습니다.
팀원 모두가 울기 직전인 상태로 크런치 모드에 돌입했어요.
그 결과 1년 걸렸던 개발이 무려 2달만에 절반 정도 완료되는 기적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이나 밀린 이사도 12월에는 클리어됐어요.
이미 1달이 절반하고도 한참 넘어갔기 때문에, 26년 계획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도 이젠 과거가 되었고, 거기서 배운 점을 기반으로 새롭게 프로세스를 개선했어요.
원래 개인 업무일지는 팀의 협업 툴 내부 메뉴를 따로 생성해서 관리하는 중이었습니다.
다만 협업 툴 사용성이 매우 좋지 않았어요.
한 페이지에서 일정을 관리할 수도 없고, 자동화 기능도 없고, 캘린더도 없어서 쓰다가도 불편해서 누락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개인 업무 일지는 노션으로 변경했어요.
유튜버 유버디님의 노션 템플릿을 활용했습니다.
이 템플릿의 장점은 일간 업무일지, 주간 업무일지가 자동 생성되어 관리하기 편하다는 점이에요.
출근하자마자 업무일지를 작성하고, 퇴근할 때 업무 진행도를 평가합니다.
주간일지는 유버디님의 조언에 따라 노션 AI를 사용해서 작성하는데 그 효율이 매우 좋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월간 회고 템플릿과 전체 업무 관리 페이지를 추가로 생성해서 업무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보통 단일에 끝나지 않고 일정 기간이 소요되는 업무가 많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습니다.
25년에는 하나의 템플릿에 개인 일정과 업무 일정을 동시에 관리했어요.
더불어서 협업 툴의 개인 업무일지까지 작성하다보니 관리가 중구난방으로 퍼져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개인과 업무 템플릿을 철저하게 분리했어요.
업무는 위에서 언급한 '업무 일지' 노션 템플릿으로 정리했고, 해당 페이지에 목표를 작성할 때도 개인적인 목표는 엄격하게 지웠습니다.
오로지 회사 업무에서 내가 목표로 하는 바에 집중해서 작성했어요.
개인적인 일은 노마드윤님의 노션 업무 템플릿을 활용했습니다.
업무 템플릿이지만 저는 개인 일정, 사이드 프로젝트, 회사 업무를 배제한 개인 목표를 관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회사 업무와 개인 일을 엄격하게 분리한 덕분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회사 노트북 북마크 바에는 '업무 일지'만 추가하고, 집의 개인 데스크탑 북마크 바에는 '개인 일지'만 추가해두었는데요.
업무 시간에 무의식적으로 개인 업무를 마주하며 따로 생각하는 시간도 사라졌고, 반대로 퇴근 후에 회사 업무를 보며 생각이 딴길로 새어나가는 일도 없어졌어요.
제대로 된 피드백은 상반기가 지나야 나오겠지만 현재까지는 매우 만족하는 방법입니다.
이전까지는 종이에 직접 그려서 설계하는 게 다였어요. 그러다보니 설계 관리가 전혀 안 되더라고요.
중간에 설계한 종이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나중에 수정하면서 기억이 나지 않아 곤란하기도 했고, 여러 번의 수정으로 지저분하게 덧댄 종이를 남에게 공유하며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draw.io에 지금까지 작업한 설계를 모두 다이어그램으로 정리했습니다.
또 이후에 추가 개발이 필요한 요소들은 1차 설계 이후 다이어그램으로 다시 정리하여 팀에 공유하고 있어요.
덕분에 협업하는 동료들도 제 프로세스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수정도 훨씬 간편해졌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공유할 수는 없지만, 아주아주 대략적으로 표현하자면 아래처럼 사용합니다.

사실 이것보다 더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개인 일지에서 보셨듯, 1월에 가장 먼저 한 것은 제 이력서를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어? 이 사람 이직 준비하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달마다, 혹은 분기마다 이력서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건 제가 가진 총알의 개수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업계에서 얼마나 매력적인 인재인지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체크하여 좀 더 보완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회이기도 하죠.
그래서 올해 가장 먼저 제 이력서를 점검하고 새로 작성했습니다.
아직 이력서가 완성된 건 아니지만, 완성되면 언젠가 블로그에도 공유하도록 할게요.

민음사의 25년 마지막 일력 문구가 너무나 인상 깊었어요.
다사다난했던 25년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26년에는 좀 더 즐거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블로그도 자주 방문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