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름: 싯다르타
저자: 헤르만 헤서
옮김: 박진권
출판사: 더 클래식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는 어릴 적부터 모두에게 인정받는 천재로 장래가 밝았으나, 마음 한 구석으론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가하여 사마나들과 함께한다.
사마나들조차 그의 안에서 생겨나는 의문에 대한 명료한 답을 주지 못했기에 그들을 떠나 성인 붓다를 찾아가 배움을 청한다. 붓다는 그의 질문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 안의 모든 답이 있었으나 그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는 도성에 들어 아름다운 여인 카말라를 만나 육체적인 쾌락을, 카마스마비를 통해 물질적 쾌락의 즐거움을 알게 되며 점점 속세에 물들어 간다.
도박으로 탕진하고, 유희들과 몸을 섞고, 술에 기대어 살아가며 사마나로 살아갈 적의 경멸하던 소인배와 같아지는 본인의 모습에 경멸하며 다시 도성으로 건너갈 때 만났던 뱃사공 바수데바에게 배움을 청한다.
그 끝에 싯다르타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독자의 경험을 망치고 싶지 않기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려 한다.)
필자가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앎
(책에선 깨달음) 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다. 가르침이란 그저 단편의 지식에 불과하기에 배운 것들을 본인이 깨우치는 (본인의 것으로 체화하는) 단계가 필요하다는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싯다르타의 성찰 과정에서 나타났기에 크게 놀랐다.
필자는 지금껏 많은 문제의 원인과 답을 외부에서 찾으려 했다. 그래서 필자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고 그 사이에 많이 방황하고 헤매었다. 존재에 대한 불안과 지독한 우울, 사무치는 슬픔에 정신과에도 내원했다. 처음에는 이런 세상을 원망했고, 그 다음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끝에는 나 자신까지도 의심하고 원망했다.
그러나 문제를 정의하는 것도,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이해하는 것조차 전부 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책을 읽고 흐느껴 울게 된 이유 역시 그의 모습에서 과거의 필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 열망도, 그 방황도, 그 깨달음도 모두 내 안에서 이뤄진다.
“너희들은 마땅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다른 것을 등불로 삼지 말아야 한다. 자기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여 다른 데 귀의하지 말라.” (自燈明法燈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