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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실제 가지고 있는 현물은 십수년이 지나 빛바랬는데, 군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쉽지만 yes24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을 첨부했다. 책등은 완전히 새하애져서 글씨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데 되레 빈티지하게 느껴진다.
책 이름: 암흑의 핵심
저자: 조셉 콘래드
출판사: 민음사
역자: 이상옥
신병 위로휴가가 아닌 제대로 된 첫 휴가를 만박으로 나가게 되었다. 본가에 도착해서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 꽃혀 있는 책장을 찬찬히 둘러 보었다. 암흑의 핵심
? 제목에서 팍 꽃혀서 바로 읽게 되었다.
매번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얘기만 해서 바이럴처럼 오해를 받을까봐 덧붙이자면, 우선 필자의 집에는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 밖엔 없고, 읽던 도중 뒤늦게 민음사의 번역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읽게 되었을 뿐이다. 혹자가 말하길, 을유 출판사의 어둠의 심연이 더 잘 읽히고 번역 또한 제대로 되었다고 한다.
책의 뒷표지에는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의 원작소설이라고 하는데 책을 보기 전에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필자는 안 봤지만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책이 좀 어렵다.
물론 2장부터는 몰입감이 좋아서 첫장보다 2-3장이 더 빨리 읽히나, 초장부터 떨어져 나갈 수 있기에 관련있는 작품을 미리 보고 오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번역 문제보단 - 뭐 을유 출판사의 어둠의 심연을 안 봐서 모르겠으나 - 원서 자체의 난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은, 그냥 줄거리만 보자면 별거 없다. 주인공이 배를 타고, 어릴 적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녀오는 소설이다. 소설의 시점은 배에 탄 선원 아무개씨가 같은 배에 탄 찰리 말로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이 시점이 주는 임팩트가 강렬한데, 저자가 찰리 말로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독자는 배에 탄 아무개씨가 되어 이야기를 듣는 듯한 강렬한 몰입감을 준다. 상상해보라, 배에 올라 무릎을 그러안고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와중에 듣게 되는 모험담을. (필자는 스포일러를 싫어하기 때문에 책의 줄거리와 관련해선 가급적 언급하지 않고 이 정도만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 있어 줄거리는 정말 피상적인 부분이고 내막은 모험 소설이 아닌, 제국주의의 실상을, 한 인간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진정한 자기 인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암흑의 핵심
으로부터 발견하게 되는 추체험의 기록이다.
우선 필자는 역사에 대해서 정말 너무나 아는게 없다. 그래서 제국주의가 나쁘다는건 아는데 대체 뭐가 왜 어떻게 나쁜지 설명하라고 하면 하질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인 추악한 행위, 물론 이것도 주요하지만 <그네들 야만인들에게는 마땅히 초자연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여야 하고, 하느님 같은 힘을 과시하면서 그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는, <위엄있는 선의를 가지고서 그 거대한 이국적 세계를 통치해야 한다>
는 그들의 이념을 통해 제국주의에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제국주의에 대한 어떤 예리한 비판의 시선보다는 단지 제국주의는 하나의 장치이자 수단에 불과하며, 본질적인 부분은 말로의 개안에 놓여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꼭 제국주의일 필요는 없으며 인식의 확장 수단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말로를 통해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보단 삶이란 무엇인지, 또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무심하였는지를 환기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 들이게 되는거야"
프리드리히 니체는 선악의 저편
에서 이러한 말을 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다.
우리가 진정한 자기 인식을 획득하지 못한다면 어둠에 사로잡힐 뿐이다. 어둠으로부터 빛을 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