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그리고 한 달 회고

·2026년 2월 15일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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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회고의 소개글을 다시 읽어보면, 그때의 나는 2025년을 꽤 기대하고 있었다.

2024년 회고록

해가 바뀌지 않길 바라던 과거의 내가 무색하게도, 지금은 오히려 2025년의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설렘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2025년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직무 전환의 기쁨 뒤에는 예상보다 빠른 이별이 있었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막막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이 한 해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실패나 불안만은 아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마다 나를 붙잡아준 사람들의 말과 태도, 그리고 작은 호의가 함께 떠오른다.

돌아보면 나를 이루고 버티게 한 것은 결국 사람들의 다정한 한마디와 작은 행동이었다.
그래서 이번 회고는 단순히 2025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적는 글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며 내가 무엇으로 버텼는지를 기록하는 글로 남겨두고 싶다.

무너졌던 초반, 다시 시작하는 마음

2024년 12월, 최종합격 소식을 들으며 그렇게 바라던 개발자 커리어 전환에 성공했다.
그때의 설렘은 2024년 회고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커리어의 시작과 함께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업무일지를 쓰고 한 달 회고를 남기며 스스로를 점검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차가웠다.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점인 2개월 차에, 나는 다시 신입 취준생이 되었다.

그때는 정말 세상이 밉다고 느껴졌다.
수습 종료라는 결과는 나에게 큰 좌절이었다.

그런데 면담에서 들었던 한마디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희망이 되었다.
수많은 이력서 중에서 나를 보고 뽑았던 만큼, 분명 또 나를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니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내가 롤모델로 생각하는 분도 시간을 내어 식사와 커피를 사주며 응원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 시간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은 한참 멀었지만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3월, 버티는 시간을 지나 다시 도전하기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그 시기의 기억은 대부분 ‘버틴다’는 감정으로 남아 있다.

짧은 근무 후 퇴사하게 된 경험은 주변 사람들의 언행을 다시 보게 만들었고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 잡다한 생각에 계속 잠기지 않기 위해 여러 활동을 계획하고 신청했다. 잊고 싶어서 바쁘게 움직였던 시간에 가까웠다.

그러던 중, 한 달 스터디의 마지막 멘토링 시간에서 멘토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다.

“너무 욕심이 많다. 내려놓고 하나에만 집중해라.”

당시의 나에게 꼭 필요했던 말이었다.
무언가를 계속 시도했지만 어떤 것도 만족스러운 결실로 남지 않아 더 조급해져 있던 때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종종 그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물론 여전히 어렵지만 그 문장은 오래 남았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수습 종료 면담을 했던 바로 그날 지원했던 회사에서 최종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때의 나는 어떤 개발을 하고 싶은지보다는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더 감사했다. 공백기 없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현실만으로도 감사했다.

4월부터 7월까지, 재시작의 시간

새로운 회사는 이전 회사와 구조도 일하는 방식도 달랐다.
그래서 단순히 업무를 새로 배우는 것을 넘어서 태도와 관점을 다시 조정해야 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입사하자마자 새로운 서비스의 웹뷰를 담당하게 되었고 입사 3개월 차에 그 서비스가 릴리즈되었다.
이전 회사에서 얻었던 디버깅 경험은 이 시기에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이슈가 발생했을 때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근본 원인을 찾아가는 방식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긴급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차선책을 제시하며 진행시키는 경험도 했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에는 최선이었다.

이 시기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프로젝트 회고다.
서비스가 릴리즈된 뒤 팀 단위로 공개 회고를 진행했는데, 그 자리를 통해 내 상태를 솔직하게 공유하고 프론트엔드 파트가 겪고 있던 문제를 드러낼 수 있었다. 그 경험은 이후 데일리 스크럼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입으로 입사했지만 팀 안에는 리드 개발자가 없었고 조언을 충분히 얻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래서 3개월 차에 항해 플러스 프론트엔드를 신청했다. 업무와 병행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시야가 넓어지는 것도 느꼈다. 당시의 한 줄 일기를 보면 힘들다고 적어두면서도 늘 즐거워 보이는데, 특히 멘토링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8월부터 11월까지, 함께 일하기

수습기간 동안 겪었던 소통의 부재를 그대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7월에 데일리 스크럼을 제안했고 8월부터 실제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애자일에서 말하는 데일리 스크럼을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다.
내가 원했던 것은 팀원들 끼리 매일 짧게라도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고 서로의 상황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소통의 다리를 하나 놓고 싶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도입 과정은 쉽지 않았다. 대다수가 부정적이었고 스크럼을 바라보는 관점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서로의 시선을 맞추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2월 현재, 아침 10시에는 백엔드 개발자들까지 함께하는 데일리 스크럼 시스템이 자리 잡았다.
우리 팀이 애자일이나 스프린트 단위로 일하는 팀은 아니지만, 지금의 데일리 스크럼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안하며 변경 사항을 빠르게 전달하는 소통의 통로가 되고 있다.

이건 정말 기쁜 변화다. 우하하.

10월에는 사내에 앰플리튜드를 도입하게 되었다.
리액트에 강하게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프로젝트 상태를 트리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 마케팅 이벤트 툴을 하나의 인터페이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추상 레이어를 두고, 이벤트 버스를 통해 상태를 연결하는 구조로 개선했다. 이후 기존 GTM도 같은 인터페이스로 리팩토링되면서 개발자 경험까지 좋아졌다.

이 과정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조가 잘 잡혀 있으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빠르게 합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리팩토링은 신입 개발자분이 진행했는데 한 번 설명하고 나니 코드 구조에 대한 의견이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좋은 코드 구조가 단지 ‘예쁜 코드’를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협업 비용을 줄이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11월은 정말 힘들고 억울한 감정이 많았던 달이었다.
퇴사자가 맡고 있던 사이드잡을 내가 관리하게 되면서 일이 많아졌고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그럼에도 11월이 완전히 힘들기만 했던 달은 아니다.
프론트엔드 파트에는 폴더 규칙 같은 기본적인 컨벤션도 없었고 기획 변경이 잦은 만큼 API도 자주 바뀌었다. 그런 상황에서 백엔드 개발자분들이 프론트엔드와 백엔드의 타입 분리를 여러 번 제안했고 나는 항해 플러스에서 배운 FSD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를 바탕으로 여름부터 계속 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왔다. 실제로 FSD 도입을 결정한 뒤 본격적으로 구조를 잡고 코드를 작성한 시점이 10월 말에서 11월이었다.
사실 경험 많은 앱 개발자분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함께 레이어를 나누고 규칙을 맞춰가며 우리만의 FSD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꽤 즐거웠다. 지금도 계속 보완 중이지만 서로 근거를 들며 설득하고 더 나은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정말 재미있다.

회사 밖에서 얻은 성장

9월에는 항해 플러스 프론트 과정이 끝났다.
2025년 여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항해 플러스였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배움의 밀도도 높았다. 2025년에 잘한 선택을 꼽으라면 분명 TOP3 안에 든다.

무엇보다도 함께 공부했던 스터디원들과 코치님들의 존재가 그 여름을 오래 기억에 남게 만들었다.
배운 것도 많았지만 그 시간 자체가 내게 좋은 자극과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12월에는 테오콘을 빼놓을 수 없다.
발언권을 얻기 위해 손드는 것조차 떨리던 내가, 이틀 동안 30명에서 40명 정도가 있는 세션의 MC를 맡게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해냈나 싶을 정도다.

나는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때마다 종종 ‘어쩔 수 없으니 나를 믿자’는 마음가짐을 갖곤 하는데 테오콘 MC는 그 태도를 가장 온전히 실천했던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는 새로운 일을 마주했을 때 예전보다 조금 덜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 경험을 지나며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우하하!

그리고 내가 담당했던 둘째 날 B트랙에 오원이 스피커로 참여한 것도 무척 뜻깊었다. 2023년 여름 테오스프린트에서 만나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오원이 내가 맡은 트랙의 스피커라는 사실이 참 뿌듯했다. 개발자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오원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기에 그 시간이 더 특별하게 남아 있다.

힘든 시기에도 늘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곁에서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오원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2026년 1월

2026년이 시작되고 다른 사람들의 회고글을 읽으면서 나 역시 2025년을 정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이미 중간중간 회고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2025년에 대한 아쉬움이 꽤 많이 쌓여 있었다. 단순히 정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보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1월만큼은 더 의식적으로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2026년 2월의 나태함과 비교될 정도로 1월의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업무에서는 디자인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리팩토링을 시작했다.
아직 구축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리팩토링’이라는 표현이 완전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토큰 구조와 규칙, 컴포넌트를 새롭게 정리해나가는 작업을 시작했다. 모두가 디자인 시스템을 처음 만들어보는 만큼 조율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힘들었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서비스 마이그레이션 초기 작업도 함께 시작했다.
기존에는 Amplify로 배포하던 것을 OpenNext와 SST를 사용한 구조로 옮기기로 팀과 협의했다. 세팅 당시에는 open-next/aws가 Turbopack을 지원하지 않아 개발 환경에서는 Turbopack을 사용하고 프로덕션 빌드에서는 Webpack을 사용하도록 임시 조치해둔 상태다. 언젠가 반드시 정리해야 할 숙제로 남겨두었다.

아침 7시 모닝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늘 8시 반쯤 느지막이 일어나 출근했던 것이 아쉬워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그 덕분에 1월에는
'육각형 개발자'와 '함께 자라기'를 완독했다. 특히 '함께 자라기'를 읽으며 “함께”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읽는 것과 실제로 해내는 것은 정말 다르다.

또 디자인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고 배포해보면서 npm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고, 그 흐름으로 npm deep dive 스터디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예전에 롤업을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끙끙 앓았던 경험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때의 막막함이 조금씩 이해로 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늘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졌던 오픈소스에도 처음으로 도전했다.
오픈소스 기여모임 10기를 통해 기여할 수 있는 레포지토리를 찾으며 실제로 Vitest에 PR을 올려 머지까지 경험했다. 사내 업무에서는 주로 단순한 타입을 다루었다면 이 과정에서는 훨씬 다양한 타입 설계를 접할 수 있었다. 단순히 결과가 남아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가 꽤 좋은 공부였다.

기분 좋아서 찍었던 사진기쁨과 감사함을 공유한 것

되돌아보면

2025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들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2월에는 롤모델의 한 끼와 “포기하지 말라”는 면담자의 말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3월의 혼란 속에서는 멘토님의 “하나에만 집중하라”는 조언이 방향을 잡아주었다.
여름에는 항해 플러스 동료들과 코치님들의 피드백이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11월, 가장 바쁘고 지쳤던 시기에는 앱 개발자와 함께 FSD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버팀목이 되었다.
12월의 떨리는 MC 도전 뒤에도 언제나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돌아보니, 결국 나를 버티게 했던 것은 늘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해 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의 시간이 더 크게 남는다.

그 덕분에 나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다 적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2026년에는

더 나은 소통을 만들고 싶어서 데일리 스크럼도 제안하고 여러 규칙도 도입해보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다. 그래서 '함께 자라기'를 읽었다.
아직도 "함께"라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만의 방식으로 더 효율적이고 유연한 소통 방법을 찾아가고 싶다.

기술적으로는 AI 시대의 슈퍼 주니어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 기본기를 더 단단히 다지면서도 AI 기술 변화에도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26년 회고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기게 될까.
더 성장한 개발자로서의 모습과 함께 일하고싶은 동료로서의 모습을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항상 함께해준 주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화이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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