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만 잘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vx_developer·2026년 9월 19일

독서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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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실제 삶의 기준으로 놓고 살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삶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일상에서는 그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Austin Kleon의 《Show Your Work!》 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이 당연한 사실을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 Kleon은 죽음을 가까이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 보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은 매일 부고를 읽으며 죽음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삶의 끝을 의식하려 한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부고를 매일 읽는다는 행동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장을 읽고 나니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고는 단순히 누군가가 죽었다는 기록이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했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삶도 조금 멀리서 바라보게 됐다.

개발은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개발에 사용했다.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만들고, 더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 계속 배우고 있다.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코드를 작성할 수 있는지를 자주 고민한다.

개발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이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개발자로 살아가는 시간 역시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뒤가 아니라 당장 몇 일 뒤를 생각해봐도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기술이나 AI가 얼마나 중요할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사용하는 기술 대부분은 바뀌어 있을 것이고, 내가 어떤 코드를 작성했는지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개발 자체를 너무 큰 목적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던 것 같다.

더 좋은 개발자가 되는 것, 더 많은 기술을 배우는 것, 더 좋은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 계속 중요한 목표가 되면서 내가 처음부터 왜 개발을 좋아했고, 개발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 있었다. 생각해보면 개발은 원래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에 가까웠다.

나는 단순히 개발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만은 아니다.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비전이 있는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머릿속의 목표로만 두지 않고 실제 삶에서 경험해볼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사용해온 이름도 Vision eXperience Developer다.

비전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제 경험으로 만들어가는 일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가 그 안에 있다. 개발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 중 하나다.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고, 교육 플랫폼을 만들 수도 있으며, 사람의 문제를 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수단이었던 개발 자체가 목적처럼 되어가고 있었다.무엇을 위해 개발하는가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개발하는가에 훨씬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개발자가 되는 것이 잘못된 목표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더 좋은 개발자가 되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다만 개발을 잘하는 것 자체가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죽음을 생각하니 이 질문도 조금 달라졌다. 내가 언젠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에게 단순히 “개발을 잘했던 사람” 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생각해봤다. 물론 그렇게 기억되는 것도 감사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가 원하는 모습과 조금 다르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기억한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찾도록 계속 질문을 던졌던 사람, 그 비전을 실제 삶에서 경험해볼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만들었던 사람, 자신이 배운 것을 교육하고 나누면서 다른 사람이 성장하도록 도왔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기술을 알고 있는지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시간을 어디에 사용했는가 가 된다.

좋은 개발자가 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개발자가 되어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서비스가 왜 존재하는지 역시 중요하다. 많은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보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만들었는지가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이것은 개발에 시간을 덜 쓰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오히려 개발에 사용하는 시간을 조금 더 분명한 방향 으로 연결하고 싶다는 의미에 가깝다. 기술을 배우는 것도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이고, 블로그를 쓰는 것도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 위해서이며,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결국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개발이 내 목적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내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것인가

이 장을 읽으며 또 하나 느낀 것은 내가 정말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계속 미래로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육에 관심이 있지만 조금 더 준비된 다음에 하려고 하고, 비전에 관한 이야기도 언젠가 충분한 경험이 생기면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책을 쓰거나 강의를 만들거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생각들을 하나의 콘텐츠와 서비스로 발전시키는 일 역시 항상 미래의 계획이 되기 쉽다.

개발에는 끝이 없다. 하나를 배우면 또 다른 기술이 나오고, 어느 정도 알게 되면 더 깊은 영역이 보인다. 완벽히 준비된 이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겠다고 생각하면 그 시점은 계속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급하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한정된 시간을 무엇에 사용할 것인지 더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개발과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서로 분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개발자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교육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을 블로그를 통해 나눌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 개발 능력을 활용해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완벽한 교육자가 된 다음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면서 가르칠 수 있고, 모든 답을 찾은 뒤 비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비전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Show Your Work라는 말을 처음에는 내가 만든 것을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계속 읽으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하려면 결국 나는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기록할 수는 없고, 모든 것을 만들 수도 없다. 결국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간을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가 내가 세상에 보여주는 작업이 된다.

그래서 이 장을 읽은 뒤에는 내가 무엇을 공유할지를 고민하기 전에 내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를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언젠가 내 삶을 아주 짧은 글로 정리해야 한다면 무엇이 적혀 있었으면 좋을까. 내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누구를 돕고 싶어 했으며, 그것을 위해 무엇을 만들고 가르치고 나누었는지가 남았으면 좋겠다.

개발을 통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가 배운 것을 교육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비전을 발견하고 실제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왔던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는 개발을 더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왜 개발하는지를 계속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보내는 시간이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삶이 끝났을 때,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지보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에 조금 더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고를 읽는 이유도 그런 것일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


References

Kleon, Austin. Show Your Work!: 10 Ways to Share Your Creativity and Get Discovered. Workman Publishing Company, 2014.

Referenced chapter: Chapter 1, “You Don’t Have to Be a Genius”
Referenced section: “Read Obituaries”

ISBN-13: 978-0-7611-7897-2.

이 글은 Austin Kleon의 《Show Your Work!》 중 “Read Obituaries”를 읽고 얻은 생각을 개발자로서의 삶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과 연결해 재구성한 글이다. 원문의 번역이나 재수록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책에서 제시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해석과 적용을 중심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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