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대한 취미를 들이고자 읽기 시작했고, 약 40일 정도 걸렸다. 간만의 독서로 소위 '벽돌책'을 고르는 것은 힘들다고는 하지만, 중반부터는 금방 읽혔다. 또한, 정보전달위주의 책인데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도 많아서 속독하기도 편했다.
책의 전개는 예측못하게 흘러간다. 처음에는 사람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원인이 단체생활이라는 당연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상상하는 능력' 에 원인이 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제시한다. 작가는 이것을 인지혁명이라고 이름붙인다.
사람은 추상적인 개념을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국가, 기업이 그런 것이다. 기업은 실제 만질 수 없는 개념이지만 모두가 기업의 존재를 인정하고 돈을 투자한다. 국가나 기업은 순전히 사람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실존하지 않더라도 존재한다.
그 뒤, 1장의 결론은 호모사피엔스가 호모에렉투스를 포함한 여러 동식물을 멸종시켰다는 주장으로 끝낸다. 나도 평소에 그렇게 생각했고, 이 주장은 별로 특이하진 않다.
2장은 농업혁명에 대해 다룬다. 농업혁명 그자체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수렵채집인이 농업인보다 영양상태가 더 좋을 것이라는 역사가들의 추측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는 신선했다. 비록 영양이 더 불량했을지라도, 농업혁명을 일으킨 사람은 스스로의 의지로 농경을 이어갔을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농경은 면적당 부양가능한 인구수를 늘렸고, 농경인은 인구를 늘렸고, 한번 인구가 늘어나버린 집단은 식량문제로 다시 수렵채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뿐만아니라, 농업은 사실 수렵채집보다 더 불확실하며(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망하면 파멸적 결과를 초래한다. 수렵채집은 어차피 인구밀도가 적어 다른걸 먹으면 된다.) 영양균형도 불량해졌고, 신체와 맞지 않는 행위를(농경) 하는 바람에 여러 병도 앓게 되었다. 이를 작가는 '역사상 최대의 사기' 라고 표현한다. 농업혁명은 더 많은 사람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있을 수 있게 해줬으니까.
위계사회를 형성하는데도 신화와 상상이 큰 역할을 차지했다. 신화로 지배층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피지배층이 상상을 통해 합리화하지 못했더라면 사회는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사람이 평등하다는 개념 또한 상상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는 작가의 생각이 인상깊었다. 현재 상황이 필연적이지 않으며, 현재 우리 앞에는 우리 상상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이다.
현대과학과 그 이전 학문의 차이. 나는 자기부정가능성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는 태도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근대이전 전통지식은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있다고 생각했고, 세계지도도 모르지만 아는 마냥 꽉 채워놓았다. 그러나 무지를 인정하고나서, 모험심과 호기심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를 대표하는 물건이 여백이 있는 세계지도라는 느낌을 받았다.
근대이전 사회의 유토피아는 과거였다. 요순시대, 아담과 이브 등 지향점은 과거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유토피아는 새로운 사회와 같은 미래지향적인 태도이다. 이 가치관의 차이는 무지의 인정으로부터 온다는 시각은 매우 신선했다. 무지를 인지하고,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강하다. 스페인인들은 미지의 인간 영역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에 대한 전문가였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는 둘 다 탐욕적이고 결과지향적이며, 야망적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근대이전에는 국가의 부는 부 그 자체에서 나왔다. 그러나, 근대이후 국가의 진정한 부는 신용으로부터 나온다. 신용은 레버리지를 통해 많은 야망가들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도와주며, 어음과 어음을 통해 사회의 돈을 복사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들을 엮는 그나마의 믿음은 어차피 모두 평등하게 죽는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발전이 소위 '길가메시 프로젝트'로 영생을 달성하는 순간, 죽음은 가난한 자들의 전유물이 되고 가난한 자들로부터의 커다란 불만으로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