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개발자 일기] 반 강제로 퇴사하게 된 사유에 대하여 : 인생은 언제나 뒷통수를 친다.

드림보이즈·2025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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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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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3

1년 2개월, 14개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할 수 있는 이 애매한 시간을 건너, 나는 생애 첫 회사를 퇴사했다.
화장실에서도 볼 수 있듯, 항상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글쎄, 아무래도 마무리를 잘한 것 같지는 않았다.

월급이 2번 밀렸다. 나야 2번 밀렸을 때 나왔으니 2번인거고, 아직 남은 분들은 5번 밀리셨겠다.
꿈인가 싶을 정도로 짧은 기간에 큰 이벤트들이 밀려왔다.

회사 내부사정을 말할 생각은 없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9월 월급 이틀 전....

월급 지연이 될 수 있음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아니할 수 없는 관계로...

이 지랄로 애매하게 공지가 올라왔고, 우리 팀원들은 이 공지를 보자마자 모여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칼을 뺄 타이밍이 온 것이다.

떠나야 할 타이밍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월급이 밀리기 2개월, 7월즘부터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큰 이유는

1. 블록체인을 팀원들로부터 배우기 어렵다.

2. 블록체인 개발이 너무 너무 더디다.

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속 편한 소리하고 있네' 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나도 안다 ㅋㅋㅋ
완벽한 회사가 세상에 어디 있으리, 다 장단점이 있는 법. 그런데 단점이 너무 크면 몸이 기울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 철이 없는건지 패기가 남아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블록체인 개발자로써 커리어가 더 중요했다. 다른 업무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일이나 할 거였으면 내 전공을 살려서 돈을 쫓았겠지.

장점부터 말해볼까.
대중적으로 봤을 땐 월급 나왔던 이 회사는 장점이 훨씬 컸을 것이다.

  • 젊고 인성 좋은 사람들 (돈 많이 주지 젊지 사람이 밝을 수 밖에 없다.)
  • 헬스장 무료, 마사지실 1시간 1만원
  •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
  • 전 직원 1,2인 사무실
  • 주도적인 설계, 기획, 구현 가능
  • 높은 연봉
  • 3년 근무 시 1달 휴가

적으면서도 감탄이 나온다. 우리 할아버지가 괜히 뼈 뭍으라고 하신게 아니다. ㅋㅋㅋ
안정적인 회사였다면 뼈를 뭍을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다. 공무원처럼.

그러나, 말햇듯 내 우선순위 1순위는 "블록체인 학습 및 개발 향상" 이었다.

이 회사는 블록체인 업무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좀 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팽~ 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인력도 부족했고, 위에서 커버도 별로 없었다. 그냥 불쌍한 애들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사실 회장님은 적극적으로 커버해주셨다. 근데 회장님이 주장하는 블록체인의 정의는,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전혀 맞지 않았다.
우리 회사의 전통은 회장님과 2달에 한번 꼴로 발표를 한다. 30분 분량의 기술적 내용을 아무 자료 없이 달달달 외워서 설득을 하던 지식 공유를 한다.
아 지금 생각해도 진짜 뭣 같은 짓이다. 이 달달달 발표하려고 2~3주 전부터 글쓰기에, 외우기에, 아오 진짜 확씨 이게 무슨 비효율인가
임원들 다 모아두고 달달달 발표라니.

우리는 거의 반년 간 블록체인이 맞다 아니다로 티키타카를 했고, 갈수록 '블록체인이 아니라고 해도 시키는 거 하자' 분위기였다.
정말 마지막으로, 우리가 원하는 쪽으로 최대한 설득을 해보자 스탠스로 발표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물론 카이스트 교수님과 기술적인 토론은 쉽지 않다.
이제 1년차 된 나에게 "A가 왜 블록체인이 아닌지 설명하고, 그럼 설계를 어떻게 해야 되는가" 물으면 확답이 어려웠다.
그냥 내 한계다. 내가 아는 최대치를 끌어내서 대답을 해도, 내 스스로가 '진짜 수준 낮은 답안이다'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대학 강의를 넘어서, 대학원을 언젠간 가야겠구나 생각이 계속 들더라.

우리 팀 나름 중지를 모았지만, 다들 너무나 젊고, 미숙했다. 우리를 이끌 대장은 없었다. 내가 대장노릇을 해야할 상황이니, 이것이 정말 옳은가?
그래서 추석 연휴를 보내며, 이직준비를 하자고 각오를 했었다. (물론 하지는 않고 있었다. 이 편안한 생활의 늪에 빠지고 있었다.)

최대 장점이라면, '너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다.
역시 나는 '인복' 하나만큼은 타고 났다.

나는 아직 어리고 부족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베이스로 깔리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들이 착한 사람이라면 나도 친절해지고, 같이 화이팅하며 열심히 하고 싶어진다. 야근을 시켰었도 같이 으쌰으쌰하면서 웃으면서 했을 정도다. (진짜다.)
그래서 분위기 메이커도 하고, 함께 잘 되고 싶었다.

어찌 되었든, 월급이 안 나온 9월 25일부터, 팀 대부분 떠날 결정을 했다. 다들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했으랴.
우린 아직 성장해야 할 주니어였고, 배울 점이 많은 것이 멀리 봤을 때 매우 중요했으니까.

그래서 난 10월 3일, 9일 공휴일에도 코테를 풀고, 이력서를 수정하고, 개발을 했다.
무작정 퇴사? 절대 안하지. 환승 이직이 Best라는 건 알고 있었다.
개인 프로젝트 하나만 완성하면 바로 이력서를 돌리려고 했다.

일? 장난까나 월급도 안 주는데. 최소로 할 것만 하고 공부했다.

10월 18일 금요일

연차가 많이 남아서, 금요일 하루 쓰고 집에서 쉬었다. 전날 목요일까지 4일 내내 열공을 해서 피곤했다.
점심에 팀원 분께 전화가 왔다. '뭔 심각한 일이 있구나.'

'블록체인 팀을 옆 계열사 회사로 옮기던가, 남을 거면 여기서 전혀 다른 업무를 해라. 이걸 3시간 줄테니까 결정해라'

옆 회사는 100명에서 10명이 남아있었다. 내부적으로 회사를 없애겠다는 이야기가 돌았던 회사다. 우리보고 거길 가라고?
죽을 자리에 가라고? 아 알아서 죽으라는 얘기구나. 앞에서 말했듯, 우린 인력도 안되서 인력 감소 시킬 떄 최적이었다.
똑! 떼서 버리면 그만이었다.

전화를 받았을 땐 너무너무 화가 났다. 이 중요한 사안을 3시간 안에 결정하라니, 너무한거 아닌가?
어차피 다른 업무를 할 바엔 나가려고 했고, 없어질 회사에 가면, 서류상으로 실업급여 문제도 번거로워 질 거 같고,
1시간 즘 고민했다.

바로 퇴사하겠습니다.

대부분의 팀원들이 나와 같은 결정을 했다.

그리고 월,화,수 나와서 짐을 정리하고, 수요일에 마지막 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1달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이 모든 일이 한 달이라니.
상황이 급박해지니 사람들도 예민해지고, 싸우기도 했다. 내 얘기다.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나쁜 상황이었던 것 뿐이다.

수요일에는 퇴사일이라, 점심먹고 일찍 집 갔다. 우리 나름의 말 못할 일탈도 하고. 나는 그 날 서울 집 짐을 정리 다 하고, 막차로 본가에 내려왔다.

다음 회사는 "배울 점이 있는 회사", 월급이 밀릴 거면 최소한 미리 몇달전부터 알려주는 회사

돈이 다가 아니다. 항상 내 우선순위를 생각하자.
블록체인 전문가가 되기에 배울 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월급이 밀리면 당연히 안되는데, 만에 하나 그렇다면 미리미리 알려 좀 줘라. ㅅㅂ 이게 정말 기분이 뭣같다. ㅋㅋㅋ

오징어 게임 알리가 월급 밀려서 사장 손 써는 거 봤는가? 그게 월급이 4달 밀렸다 그랬나? 이게 정말 사람 할짓이 못 된다.
모아둔 돈? 있지.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다.

어쨋든 월급도 밀려보고, 고용노동부 출석도 하고, 민사 소송도 해보고

인생의 모토 중 하나가 "많은 경험을 해보자" 였는데, 참 별의 별 경험을 또 해본다.

퇴사 후 2달 반이 지난 지금, 내가 그리운 것은 딱 하나. 사람들이다.
참 아쉽다. 힘을 합쳐서 프로젝트를 드디어 몇달 좀 했는데, 이걸 마무리를 못하다니.
우리는 자주 연락한다. 가끔 만나서 술도 먹고, 공부도 같이 한다. 이 정도면 친구를 사귄건가.
너무나 인간적으로 선하고, 그런 면에서는 많이 배웠다. 나는 가끔 프로답지 못하게 감정적으로 행동했는데, 그 멍청한 나를 받아주었다.
팀원들과 동료들이 보고 싶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반드시 잘 되서 내가 술 살게요. 위스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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