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내가 신입 개발자로써 취업 준비를 할 때는, "2차면접"이 거의 없었다.
코딩테스트, 과제는 있었어도 2차면접, 인성면접은 나는 겪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신입 때 3번의 면접을 보았고, 3번의 합격을 했다. 떨어진 경험이 없었다.
자랑이 아니라 이는 내 오버스러운 준비 때문이랴.
애초에 지원을 하기 전 내가 공부해 온 것들을 복습해서 정리해놓은 이후에, 지원을 했으니까.
그리고 최대한 면접이 겹치지는 않게 하고, 기업 조사부터 요구사항에 관한 부분들을 준비했으니까.
최소한 내가 강의들은 부분은 모두 답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어찌되었든 2월 말,
연혁이 5년이 되어가는, 자체 코인도 있는 블록체인 회사 면접이 잡혔다.
이 회사가 마음에 들었던 건 자체 메인넷과 여러 블록체인 서비스들을 개발하고, 실제 운영중이기 때문이었다. 코어와 백엔드 등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니어 컨트랙트 개발자,
특히 요구사항인 JS, Solidity, 회사 관련 정보를 휴일을 반납하고 6일간 꽤나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항상 그렇다.
7일 ~ 3일 전까지는 개빡으로 공부하고, 하루 이틀 전 부터는 모든게 귀찮아진다.
'망하던가 말던가, 아 몰라 가지 말까, 걍 그만하고 대충하고 올래'
4수 때도 그랬고, 아마 자기방어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야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잘 잘테니까. 이런 생각을 지금은 하더라도 막상 현장에선
존나 열심히 할 걸 아니까.
수서역까지 SRT를 타고, 이후 버스를 타니 천안에서 1시간 20분 밖에 안 걸렸다.
오후 3시 면접이었기 때문에 내 면접 루틴대로, 1시간 반 전에는 회사 주변 카페에 가서 총정리를 한다.
정리 노트와 노션에 있는 정리본으로 한번 쭉 읽고 들어간다.
비가 온다. 굉장히 추웠다. 면접 시작 25분 전, 입을 풀고 주변을 한바퀴 걸으며 긴장을 푼다.
그냥 다 귀찮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무생각없이 들어갔다.
면접관분들이 모두 회의중이라 작고 투명한 창으로 뚫린 회의실에서 5분 정도 대기하며 심호흡을 했다.
두 분이 들어오셨다. 둘다 내 눈에는, 인상이 굉장히 좋으셨다.
얼굴이 무섭게 생겼더라도 나쁜 사람은 아닐 거 같은, 그런 인상도 있지 않는가.
이력서를 훑으며 경력과 내 포트폴리오에 대한 질문을 25분,
기술 질문인 컨트랙트에 관한 질문을 30분, 관련 시험지를 20분,
블록체인 관련 사상에 관한 질문 10분, 내가 질문 10분즘
90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본래 CS 지식도 물어봐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생략했을 정도로, 꽉 채웠다.
특히 처음으로 문제지를 만들어오셔서, 솔리디티와 바이트 코드에 관한 문제 3개를 풀었다.
관련 내용은 따로 포스팅하겠지만, 아주 간단히 소개하자면
function getCode(uint256 a, bool b, address c) external view returns (bytes32);
이 함수를 호출하려고 하는데, 바이트코드가
0x29e99f07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3039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
000000000000000000000000abcdef0123456789abcdef0123456789abcdef01
이렇게 나오면, 함수명, 각 파라미터를 구분해봐라. 였다.
뭐 어쨋든 나는 공부를 한 영역이어서, 풀었다.
바이트 세느라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이 시험지를 풀 펜이 없어서, 팀장님이 자리를 잠깐 비우셨는데, 옆의 실장님이
"이렇게 시험지까지 풀게 한 경우가 없는데, 영주님이 되게 마음에 드시나봐요"
그 말이 빈말이든 아니든, 나에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감을 얻고 할 말을 최대한 했기 때문이다. 나를 최대한 보여줄 수 있었다.
팀장님이 배웅을 해주시면서 출퇴근 이야기도 하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붙을 확률이 75%는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90분이라는 긴 시간을 꽉 채워서 봤고, 내가 답변한 내용들도 75점은 된다고 생각했다.
후련했다. 합격할 것 같다는 행복감이 아니라,
면접에 대한 불안감,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진 것이.
그래도 긴장이 확 풀려서 인지 맥이 빠졌고, 나는 63빌딩으로 가 전 팀원과 저녁을 하고,
10시 30분에 서울에서 기차를 탔다.
집에 와서 면접 질문들을 최대한 기억해 리스트업 해놓고,
새벽에는 축구도 봤다.
바로 다음날 오후 2시 30분 전화가 왔다. 기술면접 합격했다고.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당연한 거니까.
2차면접은 인성면접으로 ,이사님과 1:1로 1시간 동안 본다고 한다.
나는 인성면접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주변에 물어도 보고,
식상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도 정리하고 외웠다.
아주 130%로 오버를 하며 준비했다.
누구는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하고,
누구는 여기서 기술 질문을 물어볼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경험하지 않아서 모르겠다.
다만 한가지, 1차 면접을 보고 나는 이 회사에 가고 싶었다.
기술 면접 준비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이 짓을 또 하긴 싫었다. 한번에 끝내자.
이번에는 오전 11시. 여유있게 일어나서 출발할 수 없다.
아침 7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먹고, 준비를 했다.
내가 인사 담당자, 1차 면접관에 2차 면접에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볼 때,
더 진중하고 보수적인,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단정하게 정장 자켓도 입었다.
그런데 안에 레이어드한 흰 티가 존나 쭈글쭈글 한게 내복같았다.
이걸 아파트 1층 현관 거울에서 발견해서 부랴부랴 안 늘어나고 주름없는 티로 갈아입었다.
ㄹㅇ ㅈ될뻔 했다.
이번에는 카페에 갈 여유가 없었다. 버스가 늦게 왔기 떄문에.
8분 전에 도착했고, 미리 면접관은 기다리고 계셨다. 바로 시작했다.
내가 준비한 식상한 질문은 거의 안 물어보고, 3가지 정도.
갈등 해결, 미래의 내 모습,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냐.
이 정도고, 편한 형처럼 말하라고 해서 역시나 편하게 할 말 다 했다.
준비해온 질문들도 4가지 정도 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솔직하게 보여줄려고 노력한 거 같다.
면접이 끝나고, 인사 담당자분이 배웅해주면서 합격하면 전화오고, 탈락하면 문자가 온다고 했다.
늦어도 1주일 안에는 알려준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나는 1차 면접보다 더 큰 확신을 했다.
됐다. 85% 이상으로 됐다.
토요일, 일요일 친구들을 아주 신나게 만나서 놀고, 월요일이 되었다.
서류 합격, 1차 합격 모두 영업일 기준 바로 다음날 오후 2시 30분즘에 연락이 왔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긴장이 된다. 괜시리 신경을 돌리려 피파를 했다.
3시, 연락이 안 온다.
낮잠을 자고 싶은데, 폰 알람을 켜두고 샌잠을 청한다.
5시 반, 전화가 온다. 이럴 줄 알았다 쉬발. 됐다 시발.
다른 회사에서 면접 제의였다.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게임 회사,
국내 블록체인 회사 규모로는 아마도 가장 큰? 어캐 붙었누?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왜 연락이 안오지.
화요일도 똑같이 지나간다. 희망고문이 이런 것일까.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긴장하며 기다린다.
알림 소리만 들면 놀라면서 폰을 본다. 아주 그냥 죽음의 벨소리다.
수요일이 지나간다. 화가 난다. 탈락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왜 연락이 잘 오다가 안 올까, 담당자가 휴가갔나? 결재를 해야되는데 대표님이 출장?
목요일도 지나간다.
금요일이다. 오늘은 반드시 오겠지. 안온다. 이러면 가능성은 한가지다. 다른 면접자들이 내 뒤에 있는 거고, 그들을 다 본 다음 판단을 하겠구나.
떨어질 것에 대한 가능성이 더 커졌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메이플랜드를 시작했다. 모든 신경이 여기에 쓰인다. 재밌네.
그 다음주 월요일, 오늘 연락이 안오면 메일이라도 정중히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후 2시, 별 생각없이 피파를 하고 있었다.
문자 알람이 왔다. 미리보기에
"안녕하세요 xxxx입니다. 영주님 ~"
그대로 미리보기를 지웠다. 개씨발.
첫 감정은 짜증과 화, 그 다음은 안도감, 그 다음은 미안함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탈락하면 대체 합격을 어떻게 하냐 - 짜증
늦게 결과 알려주고 결과가 탈락이네? - 화
불확실성이 제거되니 마음이 차라리 편했다 - 안도감
주변 사람들한테 합격한 사람마냥 맛있는 거 사준다고 김치국을 마신 것 - 미안함
미세먼지가 매우 안 좋은 날이었다.
이대로 M생마냥 게임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나가자.
마스크를 쓰고 동네 뒷산으로 무작정향했다. 햇빛 좀 쐬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그래 씨발, 내 인생이 이렇게 쉽게 풀릴리가 없지.
하늘이 내게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구나. 잘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
이 마지막 실업급여를 다 털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쓰고 떠나려고 했는데, 내 생활비로 써야겠네.
이 회사를 위해서 4주 가까이 썼네?
면접 준비 또 해야 되네? 스트레스 이빠이받겠네? 근데 잘보고도 탈락할수도 있겠네?
메이플 쌀먹을 직업으로 삼을까?
결국, 내가 뭔 짓을 하던 내가 고쳐야할 건 생활패턴이었다. 난 취준생의 자세가 안되어있었다.
새벽에 자고 11시-12시에 일어나고. 게임 존나하고. 햇빛 안 쐬고. 이게 사람이냐? 폐인이지.
나는 최종 합격 연락을 받으면, 그 다음날 바로 삿포로로 4박5일 여행을 떠나려 했다.
삿포로 눈이 녹을까봐 매일같이 웹캠을 찾아봤고, 이렇게 삿포로는 개뿔 일장춘몽이었다 ㅋㅋ
지금은 모든 떨림이 멈췄다. 현실을 직시했다.
난 최선을 다했고, 잘했다. 그러나 다른 지원자들에 밀려 탈락했다.
이것이 내가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이 한달 여정의 결론이다.
몸에 떨림은 없다. 그래도 여전히 화가 난다. 내가 잘되서 반드시 다 부숴버릴 것이다.
잘근잘근 씹어주고 싶다.
난 이 경험을 독기삼아 살아가는 양분으로 삼을 것이다.
블록체인 개발자 공고는 거의 씨가 말랐다. 언제 취업할지 장담을 못하겠다.
그래도 지금은, 다시 한달 전으로 돌아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준비를 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세무사 공부하는 친구덕에, 오늘은 낮에 나가서 카페에서 정리를 좀 할 수 있었다.
고맙다. 니가 아니었으면 오늘도 메랜이나 하면서 허송세월했겠지.
이 독기로, 다시 눈을 뜨다.